가쿠다 미쓰요, <종이달> 밖에서 안으로

작년, 전국적 메르스 유행으로 외출을 삼가고 있을 무렵, 갑작스런 어지럼증으로 기절한 적이 있었다. 곧 깨어났으나 기절하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는 바람에 가벼운 뇌진탕 증세가 있어 구토를 몇 차례 했다. 다행히 재곰이가 출근을 늦게 한 날이라 곧바로 응급실로 향했다.
그날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혹시나 메르스에 감염될까봐 걱정되는 것도, 몸에 큰 이상이 있어서 기절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아니었다. 검사를 위해 이동침대에 실려 이리저리 움직이다 그 위에 누워 그대로 대기하고 있을 때 느껴졌던 이상한 어지럼증이 그것이었다. 누가 내 몸을 바닥으로 자꾸만 잡아당기는 것 같은,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미끄러지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. 내 몸은 자꾸만 바깥쪽으로 흩어지며 떨어지고 몽롱한 정신이 그걸 필사적으로 모아내지만 결국 미끄러진다.
이 책을 읽는 내내 그 때와 같은 기분이 들어 아찔했다. 책장을 덮는 마지막까지 깨지 않을 악몽처럼 아득하다. 외부로부터의 결핍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싶다... 는 막연한 희망 사항이 생겼는데. 그러려면 어떤 노력부터 시작해야 할까.

덧글

  • navi 2016/04/29 02:32 #

    제목이 종이달이라니, 참 일본 소설가스럽네요. 저도 한때 일본 소설 엄청 읽었었는데! :) (저는 오가와 이토랑 가와카미 히로미를 좋아하고, 일본 소설 입문은 하루키, 류, 바나나로 했었더랬어요. 바나나는 아직도 조금 좋아하고 류는 여전히 어렵고 하루키는 잘 모르겠어요.)

    그나저나, "외부로부터의 결핍에 흔들리지 않는" 삶, 멋질 것 같네요. 어떻게 해야 그런 삶을 살 수 있을지는 저도 모르겠지만.
  • 2016/04/29 16:33 # 비공개

    비공개 답글입니다.
  • navi 2016/04/29 23:52 #

    히로미 책은 선생님의 가방이 재미있어요 잔잔하고. 음, 1920년 미국이민 헤밍웨이 등등의 lost generation사람들이 유명한데요 저도 전공 분야는 아니에요. http://www.goodreads.com/list/show/12914.Best_1920s_Historical_Fiction 요기에 이런 리스트가 있네요!
  • 해강 2016/05/04 21:43 #

    오옹..! 상세한 추천 넘 감사드려요
    리스트 쭉 봤는데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네요 ㅠㅠ 이럴땐 정말 영어 잘하고싶다능... 흑흑
  • navi 2016/05/05 02:57 #

    번역 안된게 더 많구나..ㅜㅡㅜ 그걸 생각 못했네요! 또 뭔가 생각나면 알려드릴게요 ㅎㅎ Edith Wharton책도 괜찮아요. 순수의 시대 쓴 사람인데 아마 순수의 시대는 읽으셨을 듯..아, 드레이져의 시스터 캐리도 재미있는데 어두워서 좋아하실지 어떨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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